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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봄을 만나봄, 그리고 스며봄

강의모

만남
방송작가는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직업이다. 특히 교양 프로그램을 맡으면 다양한 직종의 별난 인물을 만날 기회가 자주 생기는 편이다. 노년의 삶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 구성을 맡았을 땐, 나의 노후도 함께 계획해보자는 생각으로 더 많은 욕심을 냈다.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은퇴 전후 어떤 고비를 맞는지, 또 성공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어떤 준비와 실행이 필요한지 등등이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2010년 6월, 시니어사회공헌사업단 레츠를 소개받고자 게스트 두 명을 스튜디오에 모셨다. 비영리단체 도봉숲속마을에서 장애인 사진을 찍는다고 자신을 소개한 나종민 대표의 당시 나이 48세. 은퇴 동기와 새로운 일에 대한 포부를 적어온 대로 또박또박 읽고 있는 그의 상기된 표정은 그야말로 천진난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나치게 순수해 보이는 그 열정이 걱정스러웠다.


다가섬
이후 2~3년은 나종민이라는 사람을 잊고 지냈다. 마침 프로그램을 옮긴 탓이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드문드문 방송국에서 그와 마주쳤다. 기사를 통해 만나기도 했다. 그저 흐뭇하고 뿌듯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모습. 얼굴 전체를 활짝 펼치는 시원한 웃음은 여전한데, 넘치는 자신감이랄까? 무게중심이 확실한 여유랄까, 나이를 거스르는 청춘의 매력이랄까. 그에 이끌려 바라봄 사진관을 찾아갔다. 부끄러운 손으로 후원신청서를 적어 내밀며 호기롭게 외쳤다.

“저의 미래는 바라봄에 있습니다. 열심히 해주세요!” 그는 예의 호탕한 웃음으로 응답했다.

이후 다시 3~4년이 지나, 그 예언은 실현됐다. 바빴던 일에 조금씩 구멍이 생기면서 은퇴 후 삶을 고민할 때 바라봄은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비영리단체 구성원을 보면, 대부분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거친 분들이라, 외부자인 내가 후원과 응원은 할 수 있어도 섣불리 나서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작년 여름 글로벌 제약기업 사노피 후원으로 ‘MPS환우 가족사진 찍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내가 끼어들 틈이 생긴 것이다.

MPS(뮤코다당증)은 당을 분해하는 효소 부족으로 몸의 각 기관에 당이 축적되면서 기능을 마비시키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현재 완치제가 없어 효소주사를 통해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유일한 치료방법이다. 환우에겐 일곱 가지 유형에 따라 신체와 지능에 다양한 장애가 나타난다. 때문에 치료와 돌봄만도 벅찬 환우가족이 여유있게 사진을 찍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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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밈
나대표와 한 팀이 되어 작년 여름 강서구 등촌동에서 첫 번째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대전, 경주, 부산 등지를 다니며 20여 가족의 사진을 찍었다. 공원에서 여러 가족이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올해 말까지 계속될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일은, 사진가의 충실한 조수로 환우가족의 밝은 희망과 빛나는 미소를 담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 그리고 다양하게 찍은 사진을 골라 사진첩을 만들 때 적당한 멘트 한 줄을 적어넣는 것이다.


작업이 결코 쉽지는 않다. 환우 상태와 가족의 상황에 따라 울컥 감정이 격해지고 후유증이 오래 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해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들과 함께 하면서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 바라봄은 이렇게 나를 성장시킨다.


다시 바라봄
바라봄은 더 넓은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바라봄이 내게 준 소망은, 이 창을 통해 내 작은 손이 쓰일 곳을 찾고 열심히 몸과 마음을 내어주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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